추 모 관

김석표님 호국원에 영면, 6.25전쟁 특수임무수행 및 특수임무수행유공자

영천시민신문기자 2015. 2. 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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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표님 호국원에 영면하다

               6.25전쟁 특수임무수행 및 특수임무수행유공자

 

 

김석표님은 1929년 함경남도 단천군 영산리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단천에서 보내고 20대 초반 청년시절 접어들때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으로 입대해 북한 “김일성을 때려잡는다”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유격대에 입대했다.

유격대 훈련을 받은 뒤 전선에 투입됐으나 전선은 자신의 마음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 첩보부대에 다시 입대했다.

김석표님이 호국원에 영면하기 전 장례식모습

 

여기서 훈련을 받고 전장에 투입, 사선을 넘나들며 여러 차례 첩보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1953년 전쟁이 휴전에 들어갈 기미가 보이자 미군들은 첩보 활동한 한국군들이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차례차례 해고 한다.

여기에 김석표님도 포함, 53년 7월경 해고됐다.

해고 되자마자 김석표님은 설악산에서 창설되는 국군 첩보부대 HID에 입대해, 후배들 교육을 맡아 각종 첩보 활동 교육을 가르치고 전역한다.

김석표님의 장례식 제단에 올려진 과일과 음식

 

이 과정에서 김석표님 자료는 정보사령부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휴전 후 김석표님은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며 전국을 다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품팔이 일자리만 얻어 겨우 생활하며 지냈다.

그러다 50년 말 북한에서 넘어온 형님 김용수(79세때 고인) 김남표님(현재 91세 완산동)을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영천에서 만났다.

큰 형님이 휴전 후 미군에서 나온 군용 작업복을 받아 염색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같이 합류해 일을 돕고 지냈다.

김석표님 장례식에 보내준 조화

 

큰형님인 용수님께서 많은 돈을 벌어 둘째와 셋째 동생을 도와주고 여기서 자리를 잡기 위해 둘째 형은 완산동 중심가에 가게를 사며 일약 기반을 잡아 일어선다.

이에 김석표님도 1961년 화북면 자천리 출신 김순녀 여사(78세)와 결혼하고 완산동 일대에서 옷가게를 시작하고 완산동에서 멀리 떨어진 자천장, 신녕장, 화산장, 아화장 등을 다니며 자리를 잡아간다.

 

장례식 각계각층에서 보낸 조화

 

옷 가게를 하면서 두 아들(영식, 영철)을 낳아 잘 성장시키고 본인은 첩보활동 탓에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80년대 말까지 경찰 관계당국의 담당자들이 일일이 활동을 보고하고 따라다니곤 했다.

영천에서 멀리 벗어나는 날은 반드시 보고 또는 감시자가 따랐다.

그래도 김석표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과 생활을 묵묵히 잘 해내고 종종 지역사회 일원으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각종 사회단체 임원을 맡아 부지런하게 활동을 잘 하고 지냈다.

김석표님이 호국원에 영면하고 난 뒤 마지막 제

 

두 아들도 잘 성장해 사회생활을 잘하고 김석표님 부부도 시장 가게에서 장사를 잘 하고 열심히 생활했다. 열심히 생활한 것은 가게 상인들은 모두 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영천시장에서 가장 일찍 문 여는 사람으로 평이 나 있었다. 아주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한국의 모범 민주시민임과 동시에 자상한 가장이었다.  

 

김석표님이 2014년 6.25 전쟁 64주년 기념행사에서 정희수 국회의원(한혜련 도의원 대독) 표창을 수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3월 보낸 특수임무유공자증서

 

 

그러다 2002년경 북파공작원 활동을 한 HID 대원(후배)들이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며 사회 불만을 표출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정부에선 타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보상에 착수한다. 김석표님도 이에 해당됐으나 자료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 보상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2013년 11월 호국영웅기장이 수여됐다

 

 

기록을 찾기 위해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에 문의했으나 기록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보사령부에 문의해 보라는 말에 의해 정보사령부에 참전 기록을 문의한 결과 정보사령부 자료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여러 차례 보충 자료 확인 등을 거쳐 HID 근무확인을 하고 2003년 6월 보상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또 2005년부터 2차 보상이 있었는데, 이때는 법적인 효력을 갖추고 보상에 착수했기에 기 수령한 보상금을 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보상해 주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보낸 국가유공자증서

 

 

이때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 담당자들이 김석표님의 보상 문제를 나쁜 마음을 먹고 차일피일 하면서 주지 않으려고 질질 끌었으나 끝까지 투쟁해 2009년 초 당당히 2차 보상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당시 나이 81세 임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 자신의 권리를 찾은 김석표님을 주변 사람들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다’고 지칭했는데,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기도 했다.

 

                                     김대중대통령이 2002년 보낸 참전용사증

 

 

큰 아들 영식씨(53)는 “아버지는 사회질서 지키기, 타인에 대한 친절, 자신에 대한 철두철미한 분이다는 것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고 했다.

이렇듯 올곧은 성격과 전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김석표님은 2015년 2월 5일 오후 4시 30분경 자택에서 노환으로 조용하게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살아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은 것처럼 죽어서도 친구, 이웃, 친지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죽음을 애도하고 영면을 기원했다.  

                                              국가보훈처에서 보낸 2013년 호국영웅기장증

 

                                              서초구 정보사령부에 남아 있는 김석표님 특수임무 요원 근무 사실 확인서

 

 

                                                    김석표 님 걸어온 길

 

1.특수임무유공자증서 2012년 3월 대통령 이명박 (국가보훈처장 박승훈)

2. 호국영웅기장 6.25전쟁 60주년 기념 호국영웅기장 수여규칙 제4조에 따라 6.25전쟁 정 전 60주년 기념 호국영웅기장을 수여 받음

3. 6.25 참전 유공자회 표창장 - 국립영천호국원장 이명재 2010년 6월 25일

4. 6.25전쟁 60주년 기념 이명박 대통령 서한 2010년 6월

5. 광복 60주년 기념 노무현 대통령 서한 2005년 8월 15일

6. 참전 용사 증서 2002년 4월 대통령 김대중 (국가보훈처장 이재달)

7. 국가유공자증서 대통령 이명박 2008년 9월 (국가보훈처장 김양훈)

8. 내무부장관 표창장 내무부장관 이해구 1993년 11월

8. 6.25 참전 유공자 표창 국회의원 정희수 2014년 6월 25일

9. 도민복리증진과 영천공설시장 활성화와 봉사정신 공, 표창장 도의장 이상효 2011년 3월

10. 새마을운동 활성화 도민교육 이수 수료증 경상북도지사 김상조 1989년 10월

11. 완산시장 질서계도와 가로환경 정비에 이바지한 공 표창 영천시장 김재학 1990 7월

12. 새마을운동 영천시지회 영천시민대학 교양 교육과정 수료 새마을운동 영천시지회장

      정상준 1989년 6월

13. 방화관리자 표창, 직장(공설시장 상인회) 자율방화관리에 기여한 영천소방서장 신영태 1987년 11월

14. 청소년 선도와 질서유지 이바지한 감사패 완산동장 양영재, 영천시사회정화위원회 위원 장 박달회 1986년 12월

15.친목단체 4.15 동우회 회원 친목도모 기여한 공로패 4.15 동우회장 박달회 1995년 4월

16. 소방관리책임자 감사패 완산시장 번영회 회장 문동락 1993년 4월

17. 영천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1996년 3월 (96년 1월 ~ 2008년 12월 31일)

18. 영천시 정화추진위원회 위원 1986년 7월 (85년 1월 ~ 1986년 12월 31일)

지난  설 부인,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호국원을 찾아 고인을 만나고 생전의 업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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