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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내 삼층 석탑, 9세기 건립 전형적인 신라탑 경주 지진시 금

영천시민신문기자 2018. 6.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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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내 삼층 석탑, 9세기 건립 전형적인 신라탑 경주 지진시 금
신월리 삼층 석탑 보물 제465호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은 1968년 보물 제465호로 지정, 높이 4.75m로 영천 지역의 석탑 중에서는 가장 크다. 석탑의 양식은 통일 신라 시대 전형적인 석탑이지만, 상층 기단 면석에 새겨진 팔부중상(八部衆像)과 1층 옥신 4면에 감실·문비·문고리 장식이 조각되어 있어 이 탑의 건탑 시기를 9세기로 추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영천 지역의 문화재로 지정된 석탑 중에서 평지에 있는 유일한 예이다.


국도 4호선이 영천에 가까워지면 냉천 교차로가 있는데, 여기에서 영천 쪽으로 접어든다. 약 1㎞ 진행하면 오른쪽에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에서 오른쪽 마을로 진입하여 350m 직진하면 신흥사가 있다.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은 신흥사 대웅전 바로 앞에 있다.


보물인 신월리 신흥사내 삼층 석탑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은 중층의 기단부, 3층의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현재 상류부는 손실되었다. 탑은 현재 높이가 4.75m이지만 상륜부의 높이를 가정하면 5m가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의 1층 옥신 4면에는 가로 30㎝, 세로 53㎝의 감실을 새기고, 그 안에 문비와 문고리 장식을 조각하였다. 1~3층 옥신에는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1~3층 옥개석의 아랫면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있다. 1·2층 옥개석에는 풍령공이 없고, 3층 옥개석 모서리에만 3개씩의 풍령공이 있다. 옥개석 아랫면을 보면 가장자리에서 층급 받침까지의 간격이 유난히 넓은 것을 볼 수 있다.


신흥사 인혜주지스님이 팔부중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하층 기단과 달리 기둥 사이에 팔부중상을 조각했는데 표면 풍화가 심한 편이다.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은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탑은 대웅전 전면에 있는데 3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고 상륜부는 없어진 상태이다. 탑은 일변 5.1m의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현재 신흥사의 주변으로는 많은 기와 조각들이 확인된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참고)
신흥사는 신라때 사찰이라고 하나 문헌이 없는 바람에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1957년 새로 건립된 절이다. 조계종 사찰이다.



신흥사에서 24년간 수도하고 공부해온 인혜 주지스님은 “삼층 석탑에 대해서는 각종 문헌에 나오는 그대로다, 아주 옛 문헌은 없지만 현재 전해져 오는 자료는 향토대사전 등에 기록된 것이 전부다. 이곳 노스님께서 주변 이야기 등을 종합해 알고 있는 사실이 많으나 몸이 불편한 관계로 설명이 어렵다.”면서 “삼층 석탑은 바로 옆에 있는 탑못에서 발견해 이쪽으로 옮겼다. 현재 70대 이상 되는 (금호)사람들은 어릴 적 여기 소풍 온 곳이다. 그만큼 주변이 공원으로 좋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주변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대학생이나 중고생들이 보물인 삼층 석탑을 찾아와 공부하고 간다. 그리고 사진작가들에겐 상당한 인기가 있다. 종종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삼층 석탑을 모델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컴퓨터에 보면 석탑 사진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세월을 말해주는 팔부중상



인혜 주지스님은 “삼층 석탑은 너무 오래된 탑으로 낡고, 금이 가고, 떨어진 부분이 군데군데 있다. 특히 4면의 팔부중상은 점점 형체를 잃어 가고 있다. 육안으로 봐도 알 수 있다. 지난번 경주 지진시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아 밑 기단이 약간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10년전 보수를 한 기억이 있는데, 보수한 자리도 자꾸 낡아지고 있다. 정기적인 점검과 보수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팔부중상

경주 지진시 사이 더 벌어진 탑 기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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