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개혁의 목소리는 - 김대환 칼럼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3. 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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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의 목소리는 - 김대환

             기독교 성경대로 불가 부처님 말씀대로

 

인간의 열쇠는 문학과 과학보다는 종교와 밀착하려는 인간관계가 더 끈끈한 힘을 발하고 있다. 어떤 작품속에서 겉의 향기는 현실쪽의 가치관으로 보이나 전체적인 분위기와 깊이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색깔과 향기 쪽으로 힘을 모은다.
산업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서구사회에서는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하여 확신을 가졌다. 전능한 신의 존재와 사랑을 성서가 말하는 대로 의심없이 믿었다.


시간은 이것을 고착화 시키지 못한 채 우주 창조의 성서 이야기를 19세기 중엽 무렵 불기 시작한 과학정신은 성서와 교회의 전통적 권위를 흐트러놓기 시작하였다.
진화론은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교의(敎義)와 권위를 추락시키며 유럽전역에 던져진 충격은 컸고 물질과 운동으로 인간을 설명하면서 우주와 인간은 신의 창조에 의한 것이 아니고 과학의 눈(目)속에 우주관으로 전이 되었다.


지구도 한 개의 별에 속하는 우주의 영역에서 인간은 광대무한 무변의 벌판 위에 한 점 생물로 고독함 속에 홀로서기 했을 때 인간 앞에 나타난 신앙의 바다는 큰 존재로 인간의 나약함을 신에게 의지하게 된 시초이다.
과학에 의하여 신의 힘이 밀린다 해도 과학은 과학의 절대 힘이 존속하고 종교는 종교 고유의 영역과 인간의 정서를 맑게 하는 자정효과가 되는 힘은 영원무상하며 시간이 지나도 불변한 것이며 불안한 미래는 종교의 안정된 사후 세계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종교 본연의 성역으로 가꾸어 내고 가야 한다.


선구자적인 종교지도자들이 오래 전부터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자세대로 생활하고 실천해가기 위하여 기독교에서는 성경대로 살자는 신앙운동이 복음주의운동이며 이 운동의 첨병격인 고 옥한흠, 하용조 목사, 이동원, 홍정길 목사 등 4인은 바로 성경대로 행하자는 복음주의의 첨병이었다.


홍정길(남서울 은혜교회)원로 목사(70)가 은퇴하는 자리에서 한국기독교협회(NCCK)총무 김영주 목사는 내가 만난 사람 중 제일 큰 목사라 했고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홍 목사에게 따를 수 있는 분이라 위안이 된다고 했다.
홍 목사는 교회를 세습하고 돈이나 권력, 자리를 세습하려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라 했다. 아울러 하나님 일에 기득권 따위는 없으며 목사는 경영인이 아니고 목양(牧羊)하듯 영혼을 돌보는 목자(牧者)라고 복음주의 운동가답게 외롭지 않게 표현했다.


불가에서도 유명한 봉암사 결사가 좋은 본보기이다. 이 운동은 불교계 정화와 혁신을 위하여 성철, 청담, 자운, 우봉 스님이 초석을 깔았고 조계종은 향기 높은 선승들의 뜻을 살리고자 여러 스님들이 합세했고 법전 스님과 비구니 묘엄 스님까지 힘을 합하여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는 취지가 곧 결사의 목표이다.
꼭 큰 스님이나 큰 목사님 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모든 종교지도자와 종교인이 몸소 실천해야 할 종교의 기본 덕목이 성경대로 행하고 살며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행하자는 것이 불교개혁 운동이다.


종교가 살이 너무 쪄 비만으로 조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취지와 일종의 개혁이다. 결국 사람이 종교를 걱정하는 의미 속에는 종교인도 종교지도자도 공통의 책임이 있기에 앞서가는 지도자의 철학은 참종교의 뜻을 새기려는 것이다.
자정의 개혁은 선진사회로 가는 무턱이다. 최근에 와서 강도높은 자정이 필요한 곳이라면 법조계와 정치계가 아닐까. 아직도 미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바깥 세상은 너무 가난한 데 예배당과 사찰 건물이 여기에 대학교 건물까지 너무 호화롭거나 높고 거창하다.
부처님이나 예수는 호화로움을 싫어하고 경계하였다. 유럽의 유서깊은 대학교의 건물은 그냥 학생들 공부하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생명의 변화가 곧 사계의 순환이다. 겨울을 이겨 온 나무들은 새싹 틔울 준비가 되었다.
정가 여·야의 개혁의 목소리가 궁색하다. 그럼 입후보자들이라도 지역마다 유권자들과의 참신한 약속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기권없는 소중한 표를 찍어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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