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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읍 약남리, 최고 당도 포도. 암반수 미나리 유명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8. 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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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당도의 포도. 암반수 미나리 유명

금호읍 약남마을 

 

구릉지와 평지가 반반씩 차지하는 지형으로 동남쪽은 채약산의 산맥이 가로지르고 서북쪽에 금호강이 흐르는 자연환경을 가진 약남마을은 금호읍에 소재한다.
약 420여년 전 유씨 성을 가진 이가 우거진 덩쿨초를 베고 논과 밭을 일구어 살기 시작했는데 물도 좋고 땅이 기름져 농사짓기에 편리한 들이라고 가야라 부르던 부락과 자연부락이 형성될 당시 어디를 파도 우물물이 쏟아져 나와 ‘물 수’를 써서 수남이라 불렸던 부락, 그리고 수남 북동쪽 마을로 마을의 분지가 마치 섬과 같다고 이름이 붙여진 도촌이라는 지명이 유래됐다.


수남은 용궁 전씨들이 살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영천복성에 큰 공을 세운 병마절도사 전삼달 장군의 후예들이다. 청석비리 또는 청석리는 영천 군수였던 이학위(李鶴委)가 흉년이 들어서 기아에 허덕이는 군민에게 양식을 주었더니 사람들이 군수의 송덕비를 세웠고 비가 있기에 청석비리라 했다고 전한다.


약남1리 전해식 이장은 “현재 마을에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 농사짓는 인구가 많지도 않다.”며 “현재 대략 28세대에 50여명이 주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지만 채약산 권역사업의 일환으로 하수시설을 보완하고 마을 안길포장공사가 곧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수호신 희화나무를 설명하는 김희주 이장


영천지역 가운데에서도 금호는 포도재배에 알맞은 기후로 밤과 낮의 일교차가 커서 화분이 잘 생기고 외관이 아름다우며 강우량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당도가 높고 토양이 기름지고 유기질 함량이 많아 향과 식미가 좋다고 유명한데 이 마을에서도 대부분이 포도농사에 종사한다.


약남2리는 약 38가구 65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김희주 이장의 이야기다. 이장에게 마을을 위해 바라는 점을 묻자 “부족한 줄 모르고 살지만 마을 도랑 복개사업을 봄철에 하다가 중단한 상태로 있는데 빨리 마무리 작업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마을을 오가는 주민들이 불편하기도 하고 외관상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약남2리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미나리이다. 처음 미나리 작목을 시작할 때 6,611㎡에 현대식 비닐하우스와 지하 150m의 암반수로 재배하고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품질인증을 받기도 했다. 가야미나리는 깨끗한 토질과 암반수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생채나 그 외 어떤 다양한 요리로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미나리 작목반장인 원병년(64)씨는 “2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가 미나리철인데 밭에서 거두는 동시에 판매되는 실정이라 특별히 납품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알아서 찾아오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따로 애를 쓰지는 않을 정도로 우리마을 미나리는 특별한 맛이 있다.”며 “향기가 좋고 맛이 뛰어나며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매우 좋다.”고 소개했다.


약남마을의 터줏대감으로 약남리 82번지에 위치한 약남리 회화나무는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데 수령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6m이상, 가슴높이 둘레2.2m정도의 규모이다. 개울가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적극적인 보호로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으며 이웃의 느티나무와 합본되어 자라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무가 갑자기 낙엽이 지면 폭우가 오고 잎 중간에 무늬가 생기면 가축에 질병이 온다고 한다.
또 조기에 단풍이 들면 유행성 질병이 많고 조기에 낙엽이 지면 한발이 예상되고 상단 부위에 단풍이 들면 중년층에, 하단부위에 단풍이 들면 소년층에 질병이 많을 것이라고 믿었던 전설이 있어 흥미롭게 하는데 마을의 동신목으로서 전 주민이 마을의 평안을 위해서 최근까지도 동제를 지냈다.


약남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 영천과 경산의 길목이어서 지체 높은 양반들이 쉬어갔다고 하여 임금말레 라는 지명이 있고 문무를 겸비한 전삼달 장군의 정자인 어서각이 있다. 전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사천전, 영천복성, 경주계림전 등에 참전해 공을 세운 전적이 있어 어서각에는 어서, 교지와 여러 가지 유물이 남아 있기도 하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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