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예를 숭상하는 사람들, 남부동 본촌마을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10. 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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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숭상하는 사람들

남부동 본촌마을

 

영천의 관문인 나들목 입구에서 지하도를 타고 좌회전을 하면 목탁 명인의 집 참선목공예가 나오고 그 길로 본촌농공단지 방향으로 300m 정도를 더 들어가면 예실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소박한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 바위는 예실마을인 본촌동이 시작되는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1층에 구판장을 둔 본촌마을회관에는 남부동의 14통장인 서종호(58)씨와 발전협의회장 박성환(64)씨, 예실협동회 회장 서기태(56)씨가 앉아 본촌동의 역사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본촌동은 동쪽으로 북안 유상, 서쪽으로 금호 구암, 남쪽으로 채신동, 북쪽으로 봉동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면적은 3.27㎢, 대략 80호 2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뒤쪽으로 독지뱅이(족좌암)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에 옛날 큰 바위를 중심으로 못이 있었고 옛 성현들이 낚시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또 담들, 오실들, 뱅방골, 고래천이라고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들이 합하여 본촌동이 되었다고 한다. 이중 뱅방골은 나들이를 다녀오던 사람이 도깨비에게 정신을 빼앗겨 밤새도록 주위를 뱅뱅 돌았다는 전설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달성서씨의 입향조인 서도가 조선 초기 이곳에 와서 예실못을 만든 이후로 그 못 주변으로 오랫동안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씨 이전에는 문화유씨들이 이 주변에 살았는데 못을 막은 이후로 후손이 끊기고 살림이 줄어들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서종호 통장과 박성환 발전협의회장 서기태예실협동회장 등이 건강한 웃음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달성서씨가 절반이 넘고 이어 김해김씨, 밀양박씨의 순으로 분포되었는데 현재는 달성서씨의 비율도 많이 줄고 타성이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
북편 협곡에서 발원한 봉동천이 마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 천을 따라 좁고 길게 촌락과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봉동천 안쪽에 있는 예곡면사무소는 낡은 기와와 와송을 자랑하며 아직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곳은 1991년 행정개편으로 유명무실한 장소가 되었다. 본촌동은 1981년 영천시 승격으로 영도동소재지였다가 지금은 남부동에 속해있다.


주민들의 주 수입원은 농사인데 주로 포도를 재배하고 벼농사나 경종농업을 하는 농가도 있다. 더러는 근처 본촌농공단지에 취직하여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
출향인사로는 서윤태(87)씨와 사촌인 서춘태(78)씨가 나란히 경찰서장을 지낸데 이어 서윤태씨의 아들 서상훈(전 영천경찰서장)씨가 현재 대구강북경찰서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명실공한 경찰집안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또 김해김씨로 지방병무청장을 지낸 고 김일곤(지방병무청장)씨와 그의 동생인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윤곤(78) 씨가 있다.


이곳 출신인 전 영천세무서장 서정환씨는 현재 창구동에서 세무사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예곡(국민)학교 출신인데 예곡(국민)학교는 한때 학생수가 700여명에 이르는 큰 학교였으나 영도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9년 9월 폐교되었고 현재 복지한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종호 통장과 함께 새마을지도자 최상호(59), 노인회장 전문표(68)씨 등이 마을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5개의 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반에는 반장(1반 반장 서기태(56), 2반 반장 전문표(68), 3반 반장 최상률(65), 4반 반장 박종철(54), 5반 반장 박원태(72)씨)을 두고 마을일을 돌보고 있다.


달성서씨들은 1934년 입향조인 서도의 4번째 아들 서숙원을 추앙하는 원모당을 짓고 현재까지 문중회의 장소로 사용하며 조상들을 기리고 있다.
또 마을에는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가입하고 있는 예실협동회(56ㆍ회장 서기태)라는 자체조직이 있는데 구판장을 운영하여 재정을 확보하고 노인회관을 짓는 등의 공익사업을 통해 마을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최용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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