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비파소리로 왜적 물리친 곳, 상수도 공급 농수로 정비 시급

영천시민신문기자 2014. 4.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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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파소리로 왜적 물리친 곳…상수도 공급, 농수로 정비 시급

 

 

영천에서 28번국도를 타고 포항방면으로 10km 정도를 가다 호국원 방향으로 좌회전 한 후 다시 4km 정도를 더 들어가면 논실이라고 적힌 마을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거기서 다시 좌측방향으로 마을안길을 따라 산 아래까지 가면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논실리이다.


논실리는 어림산 아래에 둥지를 튼 작고 평화로운 산촌으로 경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에는 맑고 깨끗한 ‘여수골못’을 배경으로 좁은 논, 밭이 모여있고 이 마을에는 32가구 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있는데 주로 벼농사를 짓지만 고추나 오이농사를 짓는 농가도 있다. 십수년전까지 고랭지농법으로 배추와 오이 농사를 지어 꽤 높은 소득을 올리던 곳이었으나 농부들이 고령화되어 가면서 지금은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100년 이상 된 버드나무가 있는데 마을의 당수나무로 20년전까지는 대대로 이 나무 아래서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논실, 여수골이 있는데 여수골은 논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주위의 산 모양이 여우(여수) 같다고 해서 여수골(예수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김완수 이장(뒤 우측)과 주민들이 모며 마을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논실리는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김귀희 장군이 처음 살기 시작했는데 전쟁중에 어머니를 이곳에 피신시키고 버드나무로 위장하여 무사히 그 위기를 모면했다고 전한다. 또 쫓아온 왜적을 거문고와 비파소리로 암호를 정하고 작전을 논의하여 물리쳤는데 선조가 그 공을 치하하며 이곳을 논실(論논할논 瑟거문고 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주민들에 증언에 따르면 김귀희 장군은 큰 바위를 들어 옮길만큼 힘이 샜다고 전해지는데 의병을 일으키고 어머니를 피신시킨 김귀희 장군의 충과 효를 기리는 충효당이란 사당과 묘소가 마을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약 50여년전 동네 안쪽에 있던 사당을 옮긴것인데 당시 쇠도리깨 같은 장군의 유물들이 많았으나 이전하면서 도난 등의 이유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논실리에는 아직도 김귀희 장군의 후손인 김녕김씨들이 모여 집성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최근 아름다운 풍경 덕분으로 5가구가 귀농을 해 고령화 되어가는 마을에 그나마 활력이 되어주고 있다고 한다.
김완수 이장은 “이곳에는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암반관정을 통해 공동지하수로 식수를 사용하는데 물에 석회성분이 많아 상수도 공급이 시급하다. 또 농수로가 정비되지 않아 농사철이면 농수로에 쌓인 퇴적물을 정비해야 하는데 장비를 사용해도 노령의 농부들에게는 힘에 부치는 작업이어서 농수로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대대로 농사를 짓는 젊은 이장 김완수(44)씨를 비롯하여 새마을지도자 김정곤(51) 부녀회장 류옥자(51) 노인회장 김현식(76) 씨가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신규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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