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감 풍 수

기감풍수 전우식 기풍수가, 무학대사 10대 명당 찾아 차례로 밟아

영천시민신문기자 2011. 7. 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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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감풍수 전우식 기풍수가 무학비결 영천 10 대명지 네 번째 밟아

 

         天 馬 嘶 風 금호읍 호남리, 2대 옥당에 3정승 나는 명지


영천의 10 대명지중 하나인 天馬嘶風(천마시풍, 황해도 병마절도사 겸 황주목사 전삼달 장군 묘, 아래 사진)을 밟았다.(모든 대명지의 거리는 조선 당시 관청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했다. 영천은 영천관청(현 영천시보건소)이 기준이다.)

 

금호읍 호남리에 속한 대승지옆 일명 '흰디미', 백마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우는 형국 지역으로 알려진 천마시풍은 영천 남 삼십리 적초안 용호단 혈전암석, 대천대로이변 이병래 미좌,  손득 신파 우수좌류 좌우과봉 나열 이대옥당 삼공가기지지.  

무학산결에 나오는 영천의 10대명지중 '천마시풍' 

대승지에서 바라본 천마시풍, 맨위 묘자리가 혈처다

 

영천 남쪽 삼십리에 풀 쌓을 안대, 청용 백호 짧고 혈 앞은 암석이 있고 가에는 큰 강과 큰 도로가 있고 혈은 병오로 내려오고 좌향은 미좌.

손방에 물이 들어오고 신방으로 빠져나가고 우측물이 좌로 흐르고 좌우 과봉이 나열돼 있다. 2대에 걸쳐 홍문관 대재학 및 부재학이 나고 정승이 3명 태어날 자리다.

천마시풍 물의 득파, 물이 흘러 들어와 나가는 방향 

위에서 본 대천대로

 

천마시풍 자리는 양룡합기혈로써 좌선용 우선수 합법이다. 병오왕수가 절반강건하니 삼합연주국야라 임궁손수가 조래하면 구빈법의 수라 정재 대왕하고 공명현달하야 발복이 원대하며 남녀장수에 삼문이 우성지라.

  

전 소장은 “천마시풍은 백마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서 우는 형국이다. 조선 무학 대사가 당시 이 자리에 대천대로가 있을 것이다고 했는데, 이후 70년대 경부고속도로와 일제 강점기 큰 못을 막은 것이 현실로 맞아 떨어지고 있다”면서 “이곳 전체가 천마시풍 처럼 보이나 이중에는 한 자리만 정혈지가 있다. 그곳이 바로 가장 위에 모셔진 전삼달 장군의 묘 자리다. 밑에는 이 장군의 부인, 아들, 손자 등이 있는 곳이며, 이 자리는 무해무득지다. 그러나 정혈처에 있는 전삼달 장군 덕으로 모든 자손이 잘 풀리고 2대 옥당에 3정승의 훌륭한 인물이 날 자리다”고 설명했다.

 

 

 

 

 

 기감풍수 전우식 명당기풍수연구소장은 평소에도 현장을 다니며 기를 연구하고 있다.

전 소장의 연구는 일반적인 산과 집터 기를 살피고 있는데, 이 일 말고도 조선 초 개국 공

신으로 조선의 통치이념중 하나로 자리 잡은 무학비결(무학산결)을 보고 현장을 다니며 기를 연구하고 있다.


 ‘무학산결’은 전 소장 집안에서 내려오는 책인데, 전 소장 아버지가 사용하던 책이며, 무학산결 사본이다.

전 소장이 소유한 무학산결 사본은 경상도를 중심으로 무학 대사가 밟은 터(산)만 있다.

무학이 밟은 터는 유명한 터라, 현재는 상당한 복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대명地로 평가되고 있는 곳이다. 경상도에 나오는 각 지역의 대명地는 경주가 8대명지(산), 대구 5, 군위 2, 영천 10, 경산 4, 선산 7, 안동 6, 상주 3, 청송 4, 의흥 2, 성주 6, 월성 3, 울산 4, 김해 2, 양산 2, 언양 1, 인동 4, 밀양 4, 진주 6, 합천 4산으로 나타났다.  

 

문의 010-8598- 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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