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천 시

성내동, 영천읍성 안에 있는 동네로 불리워진 곳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11. 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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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읍성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성내

                   영천시 성내동

 

 

성내동은 동쪽으로 과전동, 북쪽으로는 교촌동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북천, 남쪽으로는 남천이 흐른다.
성내동은 여러 지역의 자연부락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조선 후기 영천군 내서면에 속한 지역으로 성안 또는 성내라고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호동, 지소동, 서과동, 지침동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성내리가 되어 영천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1937년 7월 영천면의 읍 승격에 따라 영천읍 성내리가 되었다가 1981년 7월 영천읍이 시로 승격하여 영천시 성내동이 되었다. 1995년 영천군과 영천시가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영천시가 되어 성내동이 되었다. 성내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서부동 관할하에 있다. 성내란 지명은 영천읍성 안쪽에 있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성내동에는 영천을 상징하는 두 인물을 기리는 문화재가 있다. 숭렬당은 조선 세종 때 대마도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이순몽 장군의 집으로 세종 15년(1433)에 중국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1970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복원공사를 한 건물로 지금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으로 쓰고 있다.
호연정은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실학자였던 병와 이형상 선생이 말년에 기거하며 저술활동을 했던 곳으로 현재 병와유고가 전해져오고 있다.

 

이기출 10통장이 성내동의 경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성내동에는 영천의 천주교와 기독교를 대표하는 영천성당과 영천제일교회가 있는 곳으로 영천 선교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일교회 앞 한 모텔의 부지는 1920~30년대 한국 연예계의 거장이었던 왕평 이응호 선생의 생가터라는 이유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실제 성내동은 왕평선생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육회와 소불고기로 유명한 식당 화평대군이 197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어 영천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출향인사로는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가 당선무효 되었던 변호사 이덕모씨와 전 김태식 시의원이 있다.
성내동은 행정동인 서부동에 포함된 법정동인데 서부동은 21통으로 나쥐어 있다고 하며 서부동의 6통에서 10통까지가 성내동이라고 한다. 6통 통장은 원종구(62) 7통 한규락(58), 8통 황무식(65), 9통 정연장(77), 10통 이기출(69), 새마을 지도자로는 6통 최이권, 7통 권우활, 8통 손석건, 10통 이형욱, 부녀회장은 6통 임영숙, 7통 황입분, 9통 박현주, 10통 허경순 씨가 동네를 위해 일하고 있다.


40년전에 자양에서 성내동으로 이사 와서 12년째 10통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기출 씨는 “옛날에 대구에서 포항가는 도로가 현재의 서문길 도로다. 성내동은 번화가였던 교촌동 인근의 주택가로 조용한 동네였다. 현재는 많은 사람이 이사 가고 70호 정도의 집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기출씨는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 했다고 한다.

김종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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