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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통면 신학2리, 학이 많고 열녀의 기품이 서려 있는 마을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12.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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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많이 살고 열녀의 기품이 서려있는 마을
청통면 신학2리

 


영천에서 청통으로 가는 월부령 고개를 넘으면 바로 마주 보이는 마을이 신학 2리이며 일명 학산(鶴山)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옛날 마을 앞산에서 학이 많이 살아 마을에 길조가 있으리라고 믿으며 학처럼 마을 사람들이 장수하리라는 데서 마을 이름을 학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청통면내에서 가장 가구 수가 적은 마을로 담양전씨와 영천이씨가 주로 많으며 41가구에 92명이 살고 있다. 마을을 들어가는 도로변 입구에 열녀사인박천억처월성최씨지려(烈女士人朴千億妻月城崔氏之閭)라는 열녀각이 있다.

 


열녀각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열녀 최씨는 박천억과 혼인을 했으나 5개월 만에 남편이 죽자 염습을 하는데 자신의 옷 두벌을 남편의 관에 넣고 남편의 옷 두벌로 스스로 연결하여 묶고 “내가 죽으면 이 두벌의 옷을 관에 넣어 같이 묻어주기 원하노라”하고는 이로부터 12일동안 굶어 죽었다. 이 사실을 마을 사람들이 조정에 알렸더니 숭정 4년 인조대왕 9년(1631년)열녀로 정려(旌閭)하게 되었다. 
12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을 따라 짧은 일생을 마감한 한 열녀의 애틋한 마음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세웠다는 열녀각이다. 모든 정려각에는 비석이 있으나 이 열녀각에는 비석은 없고 열녀기문과 중수 기문만이 있다.

 

성락규 이장(왼쪽)과 전도중 노인회장(오른쪽)이 마을을 설명하고 있다.


 

을 입구에 깐마늘 공장인 학산농산이 있으며 근래 몇 년 사이에 월부령 고개아래 공단이 조성되어 철재 파렛트를 전문생산하는 (주)성하와 인팩글러벌주식회사 영천지사 공장 등이 들어서고 있다. 조금 아래 석정원석물공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주를 하고 없으며 마을 가운데 아주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부근에 유허비가 있는데 경은전선생유허비(耕隱田先生遺墟碑)로 영주목사를 지낸 읍선생 담양전씨 보(普)의 업적을 기리는 비각이다. 목공예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부처상을 조각하며 초미니 마을 경당에 학산정(학은 학 2마리 산은 산모양 亭)이란 작은 현판도 조각한 조병현 씨가 있다. 마을에는 자당시절부터 반세기동안 이장을 맡아왔던 전필락 전 이장이 있으며 청통면농촌지도자회장, 축협축산계장, 영천영유회회장을 역임한 이기태 씨가 있다.


전 이장인 이상칠 씨가 가장 많은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 마을은 과수는 별로 없으나 마을 앞 기름진 옥토가 마늘 등 농사가 잘 되고 있어 농가노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전도중 노인회장은 “마을 숙원사업이었던 경로당은 부지가 선정되지 않아 경로당 신축이 어려움이 많았으나 성락규 이장의 노력으로 지금의 경로당을 용도변경해 사용하게 됐다.”며 “우리 노인들이 여가선용과 행정의 도움을 받게 되어 다행한 일이며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해준 영천시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신학2리는 성락규 이장과 최창기 지도자, 정미영 부녀회장, 전도중 노인회장과 각 반장들이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출향인으로 광산김씨로 전 서울대 국문학자인 김성칠 박사를 비롯해 전영중 교장, 전병숙 영화물산(주)사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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