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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격증 있어야 인정받아”…얼굴흉터 이겨내고 미용실운영

영천시민신문기자 2019. 7. 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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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격증 있어야 인정받아”…얼굴흉터 이겨내고 미용실운영 
김자옥 노랑머리 미용실 원장



지역의 각 분야에서 하루를 30시간처럼 사용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한사람. 완산동에서 ‘노랑머리’라는 상호의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자옥(45) 씨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대학원을 다니고 틈틈이 봉사활동에 자기관리를 위한 운동도 빼놓지 않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김 원장이 이·미용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세 때 발생한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일이었다. “예민한 나이에 교통사고로 얼굴을 크게 다쳐 1년간 병원생활을 하고 퇴원 후에도 어린 아가씨가 얼굴에 상처가 생겨 방에만 박혀있으니 부모님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저만 보면 차라리 당신이 다치는 것이 낫겠다고 한탄하며 눈물짓는 엄마를 보면서 같이 울다가 어느 날 세상으로 나갈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미용학원에 등록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옛 기억으로 눈시울을 적신 채 보여준 미용국가기술자격증에는 상처없는 앳된 여학생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무엇이든 시작했다하면 집중노력해서 해내는 김 원장의 성품 탓에 자격공부를 시작하고는 단기에 곧바로 자격을 취득(95년)했다고 첨언하며 힘들었던 과거사를 이어나갔다.


김자옥 원장


 “자격증을 얻고 자신감을 덤으로 얻었지만 금방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인근의 어떤 미용실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기술학원이 아니라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님 밑에서 여러 가지 노하우와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얼굴이 흉져서 모두 저를 거절했어요.” 취업이 안 되니 자격을 취득한 미용학원 원장님이 피부관리 기술을 익히라고 권유했고 피부강사자격을 받아 미용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 ‘무조건 기술과 자격이 있어야 내가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걸 깨닫고 꾸준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어머니의 지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일을 하며 본격적인 미용업에 대해 눈뜨게 됐다. “지금도 성업 중인 영천미용실 원장님은 모두에게서 거절당한 저를 받아준 어머니와 같은 분이셨어요. 제가 일할 당시 미용실 문을 여는 시간부터 여성들이 번호표를 받아 줄을 설 정도로 고객이 많았는데 제가 하루에 100명의 파마를 하는 날도 많았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믿지 않았어요. 손님이 줄을 서있고 빨리 해내야 하니 자연히 손놀림이 빨라지고 기술도 빠르게 익혔죠.” 김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 같았던 그 미용실원장의 기술뿐만 아니라 직원경영과 넉넉함에 대해서도 배웠다고 첨언했다.


그곳에서 여러 해 동안 배우며 일하다가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지만 공백은 잠시, 자격과 기술을 쌓은 덕분에 김자옥 씨는 훨씬 좋은 대우로 재취업 기회를 얻었다.
“친정형제가 1남 6녀인데 미용하는 형제들이 많아서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다가 몸이 아파서 잠시 쉬었고 다시 2012년에 독립, 개인 샵으로 노랑머리 미용실을 오픈하게 되었어요.”라 풀어놓았다.


꾸준히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김 원장은 대회참여도 많았고 미용수상경력도 화려하다. 2016년 문경에서 열린 경상북도지사배 미용경기대회에서 수상, 2017년 대회수상, 2018년 영천 도지사배대회에서 금상을 차지, 올해도 서울에서 열린 국제한국미용페스티벌 미용경기대회에서 은상의 영광을 안았다.


조금은 늦게 시작했던 미용대학을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던 꿈을 이제야 완성하기 위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김 원장은 “공부하는 것도 미용업을 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고 좋아요. 현재 미용시장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 한국에서 세계대회에 출전해 3연패를 할 만큼 ‘세계 속의 미용한국’이는 이름이 손색없고 대한민국이 세계 헤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한마디로 모든 패션의 완성은 ‘헤어(hair)’라고 봅니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미용계의 스승이 될 수 있게 열심히 해서 지망생이나 학생들을 위해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라 당당하게 밝혔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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