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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표상 포은 정몽주 선생 생가터, 임고면 우항리

영천시민신문기자 2012. 4.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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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절의 표상 포은 정몽주 선생 생가터

                  임고면 우항리

 

우리 지역 내에서 선비와 충절의 고향이라 하면 떠오르는 곳, 바로 임고면 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마을로 선생이 효자로서 정려받은 곳이기도 하다. 고려 공양왕 원년 정유립 군수가 유허비를 세우고 마을이름을 효자리라고 하였다고 잘 알려진 곳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출생한 곳으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조선시대 손순효 경상도 관찰사가 이 동네에서 하룻밤을 기거하는데 꿈에 포은선생이 나타나 “이 마을 밭에 나의 비가 묻혀 있으니 촌늙은이에게 찾아가서 확실하게 물어보라.”고 했고 다음날 마을 어른에서 물어보니 꿈과 사실이 같아 그 자리에다 비를 세웠다.
비석의 내용으로 보면 손순효가 효자리비를 처음 세운 것이 아니라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했다고 나타나 있다.


이 마을에서 8대째 살아오고 있다는 주민 신재경 씨는 “지금 임고서원 성역화 공사를 크게 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항에 있는 포은 생가터와 효자리 비석을 성역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며 “시에 건의를 했으니 서원공사가 끝난다면 포은선생의 출생지인 이곳에도 걸맞은 공사가 진행될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우항리에 있는 청풍당 박영손 선생 제실


우항리는 크게 네 개의 부락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가구수가 대략 80호에 달한다. 어느 농촌지역과 다를바 없이 젊은이들은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도시로 떠나고 장년층과 노년층들이 서로에게 의지해가며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대부분 넓은 논이 펼쳐져 벼농사가 마을의 주력 산업임을 의심할 수 없고 간간히 과수원을 가꾸어 포도밭과 사과 복숭아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주민 박동삭 씨는 “우항에서는 거의 친환경재배 농법을 도입해 저농약 또는 무농약 농사를 지어 ‘명품 유기농 쌀’로 전국적인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토질이 황토질 진흙이라 쌀 맛이 다른 곳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다.”라며 자랑하였다.


한상렬 마을이장은 “넓은 들의 한가운데 3만3,054㎡ 정도의 자리를 잡은 ‘우항리 햇빛 발전소’가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발전하여 이용할 수 있게 설치된 것이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용해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을과수원과 밭을 지나 조금 더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산 아래 연하지라는 못이 있는데 이곳에 연꽃이 많이 피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못이라 한다.
연하지를 지나 더 들어가면 농로의 끝자락 즈음에 굼벵이 농장이 자라잡고 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이 농장은 2000년부터 귀농생활을 시작한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4,958㎡부지에 조류생태관과 곤충전시관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체험을 위한 방문이 잦아서 마을의 효자농장이라고 한다.


사계절 굼벵이 농장의 신철대표는 “IMF위기를 겪고 병까지 얻어 모든 것을 버리고 건강을 위해 이곳에 정착하여 귀농생활을 시작했지만 지역의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성업을 하게 되었다.”며 “처음엔 무척 고생스러웠지만 마을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이만큼 발전 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남쪽으로 고경면과 경계를 맞대고 자호천과 운주산 골짜기의 냇물이 합쳐지는 곳.
청렴하고 깨끗하며 맑다는 평으로 임금이 내린 호를 가진 청풍당 박영손 선생과 그 자손들이 기거해온 마을로 선생의 고매한 인품과 백성을 사랑하던 정신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서로 협력하고 온화하면서도 진취적이며 탐구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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